보부상이 넘던 길은 산양이 살고, 숲길을 걷노라면 나무가 일어서며 하늘을 떠받고 짙은 소나무향에 사람이 머문다-
봉화에서 춘양, 소천을 지나 울진으로 가는 36번 국도를 가다보면 불영계곡의 초입에서 소광리로 가는 푯말을 만난다. 백병산과 안일왕산의 깊은 계곡을 따라 대광천이 맑게 흐르고 기암의 절벽이 물길을 만든다. 하늘은 나뭇잎사이로 간간히 보이다 어느 곳에서는 산이 하늘이다.
세덕산, 안일왕산, 백병산의 자락이 계곡으로 곤두박질하다 드문드문 집들에게 자락길을 내어준다. 그렇게 주변의 산세를 구경하며 8km를 들어가다 보면 작은 마을을 만난다.
예전에는 길목에 징검다리가 있어, 물소리가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하여 ‘호음교(好音橋)’라 불렀다. 그래서 지금도 소광2리 마을을 ‘홈다리’로 지칭하기도 한다. 덕풍계곡, 응봉산을 북쪽 배경으로 소광리 마을은 동쪽은 울진. 서쪽은 봉화, 남쪽은 통고산 넘어 왕피천이 흐르고, 낙동정맥 백병산이 마을을 싸고 있어 첩첩이 산중이다. 백병산 아래 이 곳 저 곳 하나씩 흩어져있던 화전민들이 모여 지금은 작은 마을이 만들어졌다.
한때 보부상들이 지나던 길을 선질꾼이 지나가며 밥을 지어먹거나 하룻밤을 묵어가곤 했다. 이후 이곳저곳 흩어졌던 화전민들이 모여 작은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이 생기고 36번 국도에 버스가 다니고서도 한 동안 세상 소식은 마을 회의 때나 접했으니 그땐 선질꾼 등 외지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소광리 주변의 산은 형질이 좋은 소나무가 많아 산림청이 1959년 이 지역을 육종림 지역으로 지정하며 숲을 지나가야 들어가는 마을도 빗장을 잠근 샘이 되었다. 꼭꼭 숨겨졌던 숲이 1990년 후반에야 세상에 서서히 알려졌다. 소광리 일대에는 1600여㏊에 수령 70년부터 200~300년 된 금강송 8만여 그루가 빼곡히 들어차 있고, 500년 수령의 소나무도 다섯 그루나 자라고 있어 2001년에는 산림청이 ‘산림유전자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2010년에는 1구간을 시작으로 숲길이 만들어져 일반인에게 공개 되었다. 3명의 학생으로 1995년 폐교 된 학교터에는 금강송펜션과 십이령주막이 들어서며 공정여행과 생태탐방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십이령바지게꾼의 노래
옛날 개흙밭이 없는 동해는 서해안과는 달리 ‘백사장을 논처럼 넓게 파고 거기에다 고운 진흙을 넣어 다진 후, 논 봇도랑처럼 물길을 만들어 바닷물을 퍼 넣고, 해가 쨍한 날 하루 종일 쓰레질을 한다. 이후 가마솥에 넣어 끓여 소금을 만들었다.’
염전둑에서 채취한 소금은 맛이 좋아 강릉의 장사꾼들이 한꺼번에 사가고, 선질꾼들은 한 가마씩 사서 지게에 지고 봉화장에 내다 팔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아기 낳고 끓여 먹던 미역과 소금은 집집마다 필수품이었다. 그 중에 소금은 부르는 것이 값 이었다고 하니, 돌아 올 때는 내륙의 물품인 담배, 콩 등을 사가지고 다시 울진 흥부장으로 돌아가는 선질꾼들의 삶과 십이령고개를 넘는 장면들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미역 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은 언제 가노
대마 담배 콩을 지고 울진장을 언제 가노
반평생을 넘던 고개 이 고개를 넘는구나”
십이령바지게꾼의 노래다. 싸리로 만든 발체를 지게에 얹은 바지게를 지고 동해에서 생산되는 소금, 물고기, 돌미역 등 해산물을 흥부(현 북구 부구리)장에서 출발하여 십이령(쇳칫재, 세고개재, 바릿재, 셋재, 너삼밭재, 젖은텃재, 작은넓재, 큰넓재, 꼬채비재, 멧재, 배나들재, 노룻재 등) 열두 고개를 넘어 내륙 봉화의 소천, 춘양, 내성 장을 보기 위해 200여 리를 2~3일을 걸어 넘었다.
날이 저물면 두천리 바깥말래인 주막거리에서 잠을 자고 다시 길을 떠났다. 두천리에서 봉화장으로 가는 중간 정도에 소광리가 있다. 요즈음에는 소광리는 십이령고개를 넘던 보부상들의 이야기가 있는 1,2구간의 종점이며 3구간의 시작점으로 금강소나무 숲길의 구심 지역이다.
▲ 미인송
금강소나무 숲길
소광리 일대는 산양의 서식처이고 우리나라 최대의 금강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졌다. 금강소나무는 백두대간인 금강산, 설악산, 태백산을 따라 강릉, 삼척, 울진, 봉화 일대에 주로 많이 분포 되어있다. 혹은 춘양목. 황장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봉화·울진에서 채취한 목재를 봉화 춘양역으로 실어간다고 하여 춘양목이고, 쓰임새가 대궐이어서 황장목黃腸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나무의 심재가 붉고 단단하고 형질이 뛰어나 일제에 많이 수탈되기도 하였다.
▲안일왕산의 대왕소나무
4구간 안일왕산 코스에는 600년 추정의 소나무가 해발 800m에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서쪽은 절벽이고 바람이 지나는 능선에서 위용을 잃지 않던 소나무가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대왕소나무라 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한다는 구실로 어느 사진작가가 임의로 200년 된 주변의 신하 나무 11 그루를 자르고 대왕소나무의 가지 두 개도 자르는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던 것도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대왕소나무는 아직도 그 위용을 잃지 않고 있으나 잘린 가지가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픔의 시선으로 남았다.
▲보부상들이 제를 지내던 '내성행성불망비'
걷는 구간에는 ‘화전민터’도 지나고 돌이 많은 곳이라는 ‘썩바골폭포’, 보부상들이 제를 지내던 ‘내성행성불망비’ 와 천연기념물 제408호인 250년 된 ‘산돌배나무’도 볼 수 있다. 수 백 년이 된 소나무들의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솔향기와 500년이나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던 오래된 소나무, 못난이 소나무, 미인송 등 숲길을 걸으면 금강송 군락지에서 뿜어내는 소나무의 기품이 마음 한 가득 들어와 휘 돌아가니 호연지기를 얻게 된다.
지금은 햇빛의 아랫도리가 짱짱해지고
백두대간의 능선이 꿈틀대는 때,
보이지 않는 소나무 몸속의 무늬가
만 백성의 삶의 향기가 되어 퍼지는 때,
우리 울진 금강송 숲에서
한 마리 짐승이 되어 크렁크렁 울자
안도연 시인의 울진금강송을 노래한 시비가 햇빛에 쨍하다.
주변의 불영계곡, 박달재 비포장고개를 아슬아슬 넘어 도착하는 왕피리계곡과 함께 별유천지別有天地로 들어가는 울진의 또 다른 가을여행이 금강소나무 숲길에서 정점을 찍는다.
♧ 금강소나무 숲길
1구간(보부상길): 두천리(울진 북면)-바릿재-샛재-저진터재-소광리2리/ 편도 13.5km
2구간(한나무재길): 분천-전곡리-쌍전리 산돌배나무-한나무재-소광2리 편도/ 9.6km
3구간(오백년소나무길): 소광2리-화전민터-오백년소나무 (왕복 원점회귀)/ 왕복 16.3km
3-1구간(화전민옛길): 소광2리-너삼밭-화전민터-지심곡-소광2리(원점회귀)/ 왕복9.0km
4구간(대왕소나무길): 너삼밭-썩바골폭포-대왕소나무-너삼밭(원점회귀)/ 왕복10.4km
5구간(보부천길): 두천리-너삼밭-대왕소나무-두천리(원점회귀)/ 편도 15.3km
가족 탐방로: 산림수련관-오백년소나무-미인송-산림수련관/ 왕복5.3km
* 참고문헌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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