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이어지는 초원과 원시림은 하늘과 맞닿고, 만주벌판의 바람은 구름을 흘려 돛을 띄운다.
아! 백두산
백두산은 2744m 장군봉과 더불어 해발 2500m 이상의 봉우리가 16개이다. 북한쪽에 7개, 중국쪽에 6개, 나머지 3개는 북한과 중국의 경계에 있다. 겨울이 길어 늘 흰 눈을 이고 있고 회백색의 부석이 산머리에 얹혀있어 백두산이다.
부석은 고온의 마그마가 식어 물보다 비중이 낮아 물에 뜨는 돌이다. 천 년 전 화산이 폭발하며 화산재가 대류권 상층까지 올라가 서풍을 타고 일본 홋가이도 남부까지 날아가 쌓였다. 폼페이 최후의 날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베수비오 화산폭발보다 무려 50배나 큰 화산 폭발이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 할만하다. 화구가 함몰하여 생긴 칼데라호인 천지는 동서 거리가 8.55km이고 둘레 14.4km로 천지의 최대수심은 384m나 된다. 제주도 백록담과 비교하면 8배나 넓다.
백두산은 해발 1800m까지 완만한 현무암 고원을 이룬다. 적송, 자작나무, 잎갈나무, 가문비나무등이 주종을 이루며 고도를 높이다 사스레나무가 군데군데 수목의 섬을 이룬다. 해발 2,000m부터는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수목 한계선으로 초원은 7~8월에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 천상의 화원이다.
백두산의 해빙기가 6~9월이고 평균 기온이 10도 정도이니 6월에 이른 봄이 시작된다. 해빙기에 들어서면 고산의 꽃들은 빨리 꽃을 피우고 씨를 만드느라 분주하다. 8월에도 북사면의 눈이 녹지 않아 화산석 사이로 흐르는 물줄기들은 한여름에도 얼음물이다. 백두산은 1989년 유네스코 세계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 되었다.
초원의 오로라
빙하가 흘러간 흔적과 천지가 보이는 초지에 누워 하늘을 본다. 애국가 첫 귀 절이 생각나며 가슴 뭉클하게 끓어오른다. 나는 길을 잃어버렸다. 빙하도 쉬었다간 이곳에 누워 하늘을 보면, 용정의 선구자 노래가 그립고 29세 나이로 후꾸오까 교도소에서 숨진 윤동주 시인의 시 귀가 푸른 하늘에 다가온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여기서 멀지 않을 용정의 밤이 그려진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애국자가 되는 것일까.
비가 오다 그치고 바람이 불다 잔잔해 지며 구름은 수분간격으로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한다. 잠깐씩 보이는 푸른 초원은 마치 암흑 우주에서 사차원의 푸른 시간들이 오고가는 허상 같다. 구름 사이로 끝없는 초원들은 푸른 에너지를 방출하는 듯, 북반구의 오로라 같은 환영으로 백두산 초원에 파노라마를 펼친다. 가슴의 묵은 찌꺼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계곡엔 하늘매발톱꽃들이 청초하게 이슬을 머금고 천지를 배경으로 하늘거리는 두메양귀비, 바위구절초는 푸른 물빛보다 투명하다. 수 만 송이 오이풀들은 천지 주변에 하얀 촛대를 세웠다. 구름꽃다지, 구름패랭이, 구름송이풀, 구름국화가 피는 백두산은 늘 구름에 쌓여있다. 구름 속에서 꽃을 피우니 구름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얻게 된 이유다. 그래서 천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 천지를 본다는 것은 행운이다.
천지주변을 에워싼 고봉들은 연기와 붉은 용암의 갈등들이 만들어낸 성벽처럼 그 자락에는 이제 온갖 야생화들이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있다. 백두산이 폭발하고 다시 생성되어 풀꽃들이 만들어 낸 세상. 빗방울이 가시고 안개구름이 걷힌다. 파란 하늘이 보이며 희다 못해 새하얀 구름이 바로 머리위에 있다. 아~천지가 보인다. 구름은 푸른 천지에 빠져 흐르니 마치 태초의 시간에 서있는 듯. 눈부신 햇빛에 눈을 감아 본다. 천지는 어머니의 자궁 같이 양수의 젖줄처럼 감싸 안는다. 오만과 편견, 사랑까지 정제 시키니 자연의 힘은 나를 울게 한다.
천지의 달문에서 장백폭포로 흐르는 물은 희디 흰 포말로 겨우내 눈이 쌓여 스며든 맑은 빙하의 시린 물이다. 오래전 빙하가 흐르며 깎아낸 흔적의 피오로드 지형으로 많은 수량의 물이 흐른다. 달문은 천지의 물이 밖으로 나가는 화구의 안쪽이다. 우렁차게 낙하하는 장백폭포의 흩날리는 물방울을 맞으며 주상절리를 지나 계단을 한참 오르면 달문에 이른다.
천지는 외벽에서 감상 하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서파산문을 지나 중국과 북한의 경계지역인 5호경계비에서 청석봉, 백운봉-녹명봉-차일봉을 끼고 달문에 이르는 백두산 서파외륜종주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철저한 출입통제로 들어갈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 서파쪽의 계단을 올라 5호경계비에서 천지를 감상 할 뿐이다. 또는 차로 북파의 천문봉에 올라 천지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천지는 모습을 쉽게 보이질 않는다. 백두산은 천지뿐만 아니라 자작나무 물빛 가득 그림자를 드리운 소천지와 서백두의 온갖 꽃들이 가득한 고원의 화원을 가로질러 왕지연못에 이르는 트레킹코스가 있다. 서백두 고원은 1,800 여종의 꽃들이 피는 고산화원으로 백두산 야생화의 주요 명소다. 또한 몇 십 년 전 산불 진화를 하다 우연히 발견된 금강대협곡은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협곡으로 야생화들을 보호하고자 데크로 만들어진 숲길이 인상적이다. 늦게 개발된 남파는 화산 폭발 시에 까맣게 타들어간 탄화목 과 압록강협곡의 비경을 볼 수 있다. 백두산은 북한쪽의 개마고원을 포함한 면적이 8천㎢로 전라북도 면적과 비슷하며 중국쪽을 포함 3만㎢나 되는 넓은 지역이다.
중국은 역사의 왜곡인 동북공정을 통해 백두산 영토와 조선자치족인 연변을 성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중국은 백두산 지역을 재정비하여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신청하였으나 한국과 북한의 반발로 무산 되었다. 미묘한 지리적, 역사적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발해와 고구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민족의 백두산. 남의 영토를 지나지 않고 개마고원, 삼지연으로 오르는 백두산, 그 풍경들이 더욱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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