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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골 숨바우길
이성영 조회수:1447 175.125.66.40
2024-09-09 00:10:38

푹신한 원시림 바위 숲길 가볍게 숨 쉬듯 산책하면 숲속 명상 따로 없어

가는 곳곳 심산유곡

영동고속도로 진부IC를 나와 진부에서 정선으로 59번 도로를 달린다. 백석산(1,237m)과 가리왕산(1,561m)으로 이어지는 고봉들은 두타산, 백석봉(1,327m)의 깎아지른 산들과 오대천을 경계로 59번 도로를 끼고 있다. 그래서 도로변에는 심산유곡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막동교 다리 위에서 보는 삼단 폭포와 장전리 이끼계곡으로 들어가는 장전마을 초입의 계곡에는 경사진 바위 위로 흐르는 물줄기가 폭포들을 연이어 만들어 놓기도 한다. 가리왕산 정상으로 막 바로 올라가는 장구목이골 입구에도 아기자기한 폭포와 작은 소들이 있어 대로변에서 잠깐씩 쉬어가며 손쉽게 비경들을 접할 수 있다.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

오대천 건너편으로는 백석봉아래 자동차 한 대 다닐 수 있는 농로가 희미하게 보이는데 단일골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가을이면 단풍으로 숲이 붉게 물든다고 해서 ‘단임(丹林)’이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오대천과 물길이 합류하는 곳이 있는데 ‘안돌이지돌이다래미한숨바우’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지명을 가지고 있다. ‘안돌이'는 '바위를 안고서', '지돌이’는 '바위를 등지고 가다'이며 ‘다래미’는 '다람쥐'라는 뜻이니 ‘바위가 많아 두 팔을 벌려 바위를 안고 돌아야 할 만큼 험해서 다람쥐마저도 한숨을 쉬고 가야 할 수준의 길’이라는 의미가 된다. 예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물길과 산에 가로막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그런 지명을 만들었을까.

달리는 차 창 밖으로는 주변의 작은 밭들이 편안한 시야를 만든다. 백석봉 아래 백석폭포의 하얀 물줄기가 오대천으로 떨어지고 새털구름은 청명한 파란 하늘을 수 놓고 있다. ‘로미지안가든’을 지나 철길 굴다리를 지나 좌회전 하면 정선 북평면의 나전역-아우라지역으로 가는 길이다. 오대천은 이곳에서 ‘골지천’과 합류하며 조양강의 물줄기가 시작한다. ‘조양강’은 정선읍 앞을 유유히 흘러 가수리에서 다시 ‘동강’이라는 새 이름을 얻는다.

 

바위도 숨을 쉬는 ‘숨바우길’

북평초등학교를 지나 좌회전하면 항골계곡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항골계곡은 상원산(해발 1421m)과 백석봉(1170m) 사이에 비밀처럼 숨어 있는 계곡이다. 물이 차가워 ‘찰 한(寒)’을 써서 ‘한골’이라 부르던 게 ‘항골’로 자음동화 됐다. 초입에는 마을 주민들이 쌓은 돌탑이 있다. 과거 탄광촌의 번영을 기원하며 1998년부터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북평면은 1980년대 초반 나전광업소 탄광이 들어서면서 대한석탄공사 나전광업소 직원만 1,000명이 넘었고, 한때 이곳에 8,000여명이 거주할 정도로 북적였다. 1992년 나전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사람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이제 해발 500m의 골짜기로 시원한 바람이 분다. 물봉선이 초입부터 반긴다. 천천히 숲길을 걷노라면 분홍색, 노란색, 흰색의 다양한 물봉선을 만난다. 물푸레나무과인 들메나무가 하늘로 뻗어있고 쪽동백나무는 산책로에 그늘을 드리운다. 새며느리밥풀꽃과 눈 맞춤하자니 주변의 배초향(방아잎) 짙은 냄새는 잠시 흐르는 땀도 멎게 한다. 초입의 ‘너래소’부터 물길은 바위와 바위 사이를 지나고 물길의 바위들은 초록의 이끼로 계곡을 수 놓는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마치 바위도 숨을 쉰다는 생각으로 한참을 머물게 한다.

여기저기 크고 작은 용소가 숲길과 접해 있어 풍경에 빠져 빨리 갈 수도 없다. 지금은 숲길과 임도로 바뀌어진 산판(山板·벌목)길은 50여 년 전 나무를 나르던 길이었다. 화전민터, 모래소 등 삶의 이야기를 간직한 계곡에는 이제 오지의 원시림과 양치식물들이 세월의 흔적들을 덮어 그 푸름을 더 한다. 보랏빛 참당귀 꽃들이 숲속에 심심찮게 보이고, 여름을 지나는 계곡에는 궁궁이 꽃대들로 하얀 꽃 잔치가 한창이다. 물살은 초록의 이끼를 키우고 협곡을 흐르는 작은 폭포들은 끊임없는 소리로 숲길에 울려 퍼진다.

‘항골 숨바우길’은 '호흡을 통한 숲속 명상과 푹신한 원시림 바위 숲길을 걸으며 가볍게 숨 쉬듯 산책을 한다.'는 의미가 있다. 가파르지 않는 푸른 숲길은 걷기에도 좋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낙엽들이 오랜 시간을 지나며 발바닥의 진동을 완충하고 초록 이끼의 시원한 풍경들은 눈여겨보는 내내 명상의 시간이 따로 없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트레킹 코스로 산림청 주관 걷기 좋은 명품숲길 50선에 꼽힌 숲길은 정말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선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최적의 트레킹 코스로 꼽을만하다. 산책로는 숨바우길 입구~제1용소~거북바위~왕바위소~쌍폭포~긴폭포~등마루쉼터~백석봉까지 7.7㎞로이고, 중간중간의 진출입(1~3)로는 임도와 연결되는 곳으로 체력에 따른 반환점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세 번째 진출입로까지는 4.7㎞다. 계곡만을 왕복한다면 마지막 쌍폭포를 지나 ‘긴폭포’까지 왕복으로 8km, 천천히 걸어 3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하산 후 시원한 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는데 “얼마 전에 정선군에서 계곡 옆으로 ‘숨바우길’을 만들어 놓아 올해부터 부쩍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숲길 공사에 참여했다는 매점 주인이 넌지시 이야기를 꺼낸다. 기세 좋은 산 사이 협곡의 이미지와는 달리 완만한 산책로는 이제 산깨나 탔다는 산꾼들의 전유물이 아니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오지의 정취와 꾸밈없는 자연의 참맛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가을이 오면 물소리의 장단에 맞춰 온통 계곡을 수 놓을 단풍의 향연을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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