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단풍이 산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서해의 바닷가도 가을의 물결로 한창이다.
시흥 오이도와 인천 송도 사이로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가며 시흥의 월곶포구, 인천의 소래포구가 형성된다. 그 곳에서 다시 깊은 골을 따라 바닷물이 들어가며 소래습지와 시흥갯골습지가 형성된다. 월곶ic에서 서해안로를 기점으로 인천과 시흥시가 넓은 갯벌로 나누어지며 각각 수키로 미터에 걸쳐 구불구불 강이 만들어졌다.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밀려들며 마치 강물처럼 흐르는 광경이다. 물이 빠져야 비로소 바닷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썰물이 되면 깊은 바닥까지 드러내며 고운 갯벌의 흔적은 햇빛에 반짝인다. 갯골은 밀물 때는 바닷물이 들어오고, 썰물 때 빠져나가는 물길로 깊고 넓은 고랑이다. 소래습지는 장수천과 신천으로 연결되어지고 시흥의 습지는 물왕저수지를 지나는 보통천과 장현천이 만나 바다로 연결되는 곳으로 주변에 넓은 갯벌습지를 이룬다.
키가 작은 갈대 군락 사이로 마지막 가을이 지나고 바닷물이 잘그락 거리는 소금기 있는 습지에는 붉은 빛의 칠면초(七面草) 군락이 고운 홍자색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칠면초는 8~9월에 꽃이 피며, 꽃색도 처음에는 녹색이지만 점차 자주색으로 변한다. 어린 것을 데쳐 나물로 또는 볶음으로 또 국이나 찌개로 이용한다. 비빔밥이나 쌈밥 재료로도 쓰인다. 유사종으로는 해홍나물과 나문재가 있다.
서해안은 햇살에 무너지는 갈대와 칠면초의 붉은빛으로 가을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
‘시커먼 버팀목의 부축을 받으며 /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소금창고와 / 버려진 장난감 놀이기구 같은 수차가 / 시들어가는 홍시빛 노을을 / 망연히 바라보고 있을 뿐 /마른 뻘밭에 엎드린 / 나문재들의 흐느낌 소리를 / 엿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인천의 시인 이가림의 「소금창고가 있는 풍경」이라는 시이다. 소래포구주변은 넓은 염전이 있던 자리다. 지금이야 소래포구 와 월곶 등에는 수도권의 수많은 관광객이 드나들고 있지만 이 지역의 염전에 대한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소래나 시흥의 습지에는 오래된 소금창고가 남아있다. 1930년대 일제가 천일염을 수탈하기 위해 소래포구 지역에 염전과 그것을 운반하기 위해 소래역을 만든 이래로, 소래포구는 작업인부와 염분를 실어 나르는 배들이 정박하면서 더욱 활성화됐다. 수원과 인천 사이에 협궤철도(狹軌鐵道, 수인선)를 부설할 때, 수인선 소래역에는 염업선(鹽業線)이라는 전용선로가 있었다.
지금은 소래쪽에 1930년대 건립된 소금창고가 두 동 남아 있다. 시흥 쪽은 2000년 초에만 해도 40동의 소금창고가 갯골 양 옆으로 열을 지어 남아 있었지만 골프장이 생기며 지금은 두 동만 남아있다. 나머지는 새로 지은 소금창고 몇 동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곳의 염전도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일제 수탈의 현장과 그 곳에서 일하던 수많은 노역자들의 움푹패인 어께로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잊혀져갔다. 그 현장에 ‘서해안 연안습지 보전축’의 일환으로 습지생태공원이 들어섰다.
잊혀져 가는 염전에 소금처럼 피는 꽃
소래습지생태공원은 갈대의 숲이다. 갈대밭이 펼쳐진 갯벌사이로 데크길이 이어진다. 오후의 햇빛은 갈대꽃망울을 부풀리고 햇빛에 반사된 갈대꽃의 보풀은 바람결에 흔들리며 마음마저 흔들어 버린다. 그 갈대밭사이로 서 있는 풍차의 이국적 풍경들이 전혀 어색함 없이 정겹게 다가온다.
잘 다듬어진 생태탐방로를 따라 담수습지, 기수습지, 염생습지, 소금호수가 이어진다. 가을은 햇빛으로 소금 같은 갈대꽃을 피워내고 바람은 꽃망울을 흔들며 가을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억새와 달리 갈대의 보풀은 겨우내 바람 속에서도 남아 햇빛에 드러나는 소금 같은 꽃으로 갈대밭의 풍경을 이어준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잘 가꾸어진 핑크뮬리와 붉은 댑싸리는 가을의 정원에 앉았다.
생태공원에 들어서면 ‘가시렁차’가 한 대 눈에 보인다. “가시렁차는 ‘가소링차(가솔린차)’가 와전된 이름으로 추정되며 이 선로에서 소금을 싣는 화차를 한 번에 스무 량 정도 끌었다”고 한다. 이젠 그 흔적을 보여주는 염전들 사이로 소금을 실어 나르는 길들이 사방으로 뻗어있다. 이곳의 소금창고들은 제법 깔끔하게 복원된 것들이다. 그 옆에는 소금놀이터가 조성되어 아이들의 모래놀이터처럼 사용한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공원을 조성하며 많은 조경식물을 심었다. 댑싸리나 핑크뮬리, 억새밭도 그중 일부다. 갯골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과 습지가 마주하고 있다. 하얗게 흔들리는 억새밭 사이로 높은 ‘흔들전망대’가 마치 ‘피사의 탑’ 같이 서 있다. 높이가 높아 공원 어느 곳에서나 보인다. 흔들전망대를 지나 깊이 파인 갯골의 다리를 건너면 끝없는 습지 식물과 갈대밭이 섞여 노랗게 가을을 들판을 이룬다.
이곳 들판과 갯골을 따라서 3.5km 가다보면 놀이시설이 있는 월곶에코피아로 연결되는 ‘미생의 다리’가 보인다. 시흥시의 슬로건인 '미래를 키우는 생명도시'의 줄임말로, 경기도 시흥시 방산동에 있다. 자전거 모양처럼 생겼다 하여 자전거 다리라고도 부른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워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마침 미생의 다리를 지날 때 물이 갯골을 적시며 차오르고 있었다. 빠른 물길이다. 굽이굽이 갯골은 강의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칠면초로 붉게 물든 갯벌사이로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며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낚시꾼들의 좌대가 펼쳐지는 시간도 그때다. 물이 빠진 갯골을 맥없이 이어주던 ‘미생의 다리’의 모습이 물길에 화려하게 살아난다.
물이 들어오며 습지의 모습은 또 다른 풍경으로 만들어진다. 이곳에서 방산대교가 있는 서해안로 아래를 지나면 소래생태습지공원과 소래포구로 이어진다. 소래포구는 가을을 맞아 수도권 최대의 어시장답게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전통어시장과 난전, 종합어시장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서해바다에서 생산되는 새우젓, 꽃게, 건어물, 생선 등 모든 것들이 이 시장에 있다. 주변의 먹거리가 좋고 소래철교를 통해 건너편에 있는 월곶으로 걸어서 갈 수 있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로 주차장이 비좁으니 주말에는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 소래포구역이 개통되어있으니 편하게 전철로 여행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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